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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불의는 구별하고 살자!”
[사람 & 사람들] 92세 배우기 달인 이종희 어르신

도봉구 평생학습 서포터즈 이경걸 기자

이종희 어르신 사진
평생학습관은 이종희 어르신의 교실이자 놀이터이자 아지트다.

이종희 어르신을 처음 만난 건 지난 4월 6일이었다. 평생학습관의 뉴스레터 <평생이음>의 서포터즈(홍보기자단)를 교육하는 강의실이었다. 어르신은 맨 앞줄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다만 교육생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것은 분명했다. 앞머리를 손가락 한 마디 길이로 짧게 깎아 곧추세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흰머리가 한 올도 없는 엄격한 흑발이었다.
교육생들이 차례로 나와서 이름이며, 하는 일이며, 이번 교육에 여차여차해서 참여했노라고 소통을 나누는 시간, 어르신 차례가 되었다.
“이름은 이종흽니다. 올해로 아흔두 살이지요.”

7월 18일, 오후 1시 30분, 평생학습관 1층 회의실. 이종희 어르신을 두 번째 만났다. <평생이음> 제3호에 ‘공부하는 어르신’으로 소개하고 싶어서 몇 차례 통화 끝에 성사된 인터뷰 자리였다.
어르신에게 가장 궁금한 점은 그 연세에(무려 92세다!), 그 무슨 기막힌(?) 사연이 있기에 젊은 사람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하는가(혹은 해야만 하는가)였다. 이날도 어르신은 노인복지관에서 10시부터 12시까지 컴퓨터 수업을 받고 나서 인터뷰에 응했다.

100세 시대다. 그러나 어르신은 150세 시대를 사는 것 같다.
27년생이다. 살아온 세월이 긴 만큼 많은 일을 겪었다. 학도병 출신이다. 1951년 3월에 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1954년 12월 1일 만기 제대했다. 그 후 국방부 군수국 운영과, 체신부, KT에서 일하다 1987년에 정년퇴직했다.

실로 놀라웠다. 어르신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평생의 발자취가 머릿속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나 보다.

정년퇴직 후에는?
바빴다. 할 일이 많았다. 유공자단체와 지역사회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해왔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르신은 두 장의 명함을 건넸다. 한 장은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서울특별시지부 도봉구지회’ 자문위원 명함이다. 다른 한 장은 ‘대한민국 6.25 참전 유공자회 서울특별시 도봉구지회’ 회장 명함이다(지금은 회장이 아니라서 회장 앞에 빨간색으로 ‘전(前)’자를 써서 사용한다). 이 명함 뒷면에는 어르신의 왕성한 활동을 짐작할 수 있는 전직 및 현직 리스트가 적혀 있다. 이를테면, 방학3동 아동협의회 고문 / 대한민국 무공수훈자 강북구지회(부회장) / 대한민국 6.25 참전 유공자 강북지회장(전) / 바른선거 시민의 모임 강북구회 고문(현) / 서울병무청 신체등위 심의관(현) / 도봉·강북 재향군인회 자문위원 등인데 이하는 생략한다.

그냥 편하게 살아도 뭐랄 사람이 없을 텐데…. 공부가 지겹지 않나?
맞다. 누가 하라 해서 하는 게 아니고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다. 이 나이에 공부해서 써먹을 데가 어디 있겠나 싶겠지만 그래도 배워야 한다. 배우는 게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다. 자꾸 머리를 쓰고, 몸을 많이 움직여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어르신의 건강은 ‘놀랄 만큼 좋음’이었다. 나이를 고려했을 때 그러하다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작은 체구에서 솟구치는 에너지가 워낙 강렬해서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다. 만약 그 에너지의 양(良)과 질(質)이 가늠되지 않는다면, 요즘도 심심치 않게 방송에 나와서 노익장을 뽐내는 뽀빠이 이상용 씨를 떠올리면 된다. 조금 작다 싶은 키에 다부진 몸매, 짧은 머리, 우렁찬 목소리, 조금 빠른 듯한 말투가 뽀빠이 이상용 씨와 상당히 비슷하다. 뽀빠이 이상용 씨는 1944년생이다.
몸 건강 못지않게 중요한 게 마음 건강이다. 마음이 병들면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지만, 마음이 건강하면 적당한 돈과 빛나는 명예와 아름다운 사랑을 좇는다. 어르신과 두 시간쯤 인터뷰하는 동안 ‘적당한 돈’에 관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어르신의 주된 관심은 ‘빛나는 명예’였으므로 일제강점기, 학도병, 치열한 전투, 적군 3명 생포, 그래서 화랑무공훈장, 그러므로 국가에 충성, 그럴수록 사회에 봉사에 대하여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려 100분쯤 그랬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에 이르렀다. 어르신은 이렇게 선언했다. “정의와 불의는 구별하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어르신의 마음 건강 진단서다.

도대체 무슨 공부를 어떻게, 왜 하는가?
손꼽아서 헤아려보지 않았다. 아무튼, 많이 듣고 배웠다. 지금은 월, 수, 금요일에 노인복지관에서 컴퓨터를 배운다. 평생학습관에서 하는 영어 회화반에도 들어 있는데 요 며칠 좀 뜸했다. 구(區)에서 여는 교양강좌도 열심히 쫓아다닌다. 어쨌거나 여기저기 공부하러 다니느라 무척 바쁘다.

어르신에게 요즈음도 책을 읽느냐고 물었다. 예상되는 답변은 “눈이 침침해서 못 봐!”였다. 그런데 어르신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답으로 기자를 주눅 들게 했다.
“토인비 알지? 그 사람이 쓴 《역사의 연구》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는데….”
토인비? 물론 안다. 아널드 토인비다. 《역사의 연구》? 솔직히 그건 모르겠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공부가 직업인 학자도 아닌 92세의 ‘동네 할아버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툭∼ 토인비라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전》이나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밭에서 의형제를 맺는 《삼국지》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어르신은 지금, 여기로 느닷없이 토인비를 소환해 본인의 유식(有識)과 기자의 무식(無識)을 한꺼번에 입증했다.
네이버 위키백과를 뒤져보니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는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J. 토인비의 대표작으로 총 1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934년에 집필을 시작해서 1961년까지 28년에 걸쳐 완성했다. 일반 독자에게는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미국인 D. C. 서머벨에 의해 제10권까지를 요약한 축쇄판이 두 권으로 나오기도 했다”는데, 어르신은 이 책을 언제, 왜 읽었을까?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처럼 사는 거다. 5시 기상, 거의 매일 8000보쯤 걷기, 한 달에 3번 산악회 모임, 일주일에 2번 등산, 가끔 영화도 보고, 친구들도 만나고…. 공부는 꾸준히 계속하겠다. 봉사활동도 기회가 되면 더 많이 하고 싶다.

《멋지게 나이 드는 법 46》이란 책이 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멋지게 나이 드는 46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도티 빌링턴 박사인데 ‘인생에서 늘 성장하고, 보다 충실한 삶을 사는 방법’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단다.

이종희 어르신을 만나고 와서 이 책을 다시 훑어보았다. 책이 말하는 방법과 어르신이 살아온 삶의 방법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어르신은 더는 멋지게 나이 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강의실 앞자리에 다소곳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게 그리고 후손들에게 교훈이 될 만큼 ‘충분히’ 멋지기 때문이다.



[2018-08-09, 18: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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