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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가 필요할 때도 있었나?”
[사람 & 사람들] 청소년교육 전문 강사 고영택 선생님

도봉구 평생학습 서포터즈 이경걸

고영택 선생님

평생을 바쳐서 오로지 가르쳤다

무려 40년 세월이다. 스물 서너 살 즈음에 저 먼 곳 제주도에서 처음 교편을 잡은 이래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선생님’으로만 살아온 세월이 그렇다.
그리고 그 세월 속에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가갸거겨를 가르치던 풋내기 평교사로 한 시절, 서울시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으로 한 시절, 서울학생교육원 분원 가평영어교육원장으로 한 시절, 서울초등창의력교육연구회 초대 사무국장과 회장으로 한 시절, 서울백운초등학교 교장으로 한 시절 등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을 터이다.

2018년 11월 현재, 고영택 님은 교육공무원인 ‘선생님’은 아니다. 2년 9개월 전, 서울백운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영택 님은 여전히 ‘선생님’이고, 분명히 ‘선생님’이다. 전직을 예우하느라 부르는 호칭이 아니다. 나이 지긋한 점잖은 어른을 막연히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과도 결이 다르다.
고영택 님이 선생님인 까닭은 선생님으로서 40여 년 동안 해왔던 ‘가르치는 일’을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고영택 선생님이라 부르자).
물론, 가르치는 일은 똑같더라도 예전의 고영택 선생님과 현재의 고영택 선생님이 똑같지는 않다. 가르치는 대상이 다르고, 가르치는 내용이 다르고, 가르치는 방법이 다를 테니 하는 말이다.

‘이배사랑’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가르친다

정년퇴직 후 고영택 선생님이 근무하는 학교는 ‘이배사랑’이다. 이배사랑은 도봉구청에 소속된 자원봉사단체인데, 고영택 선생님은 이 단체에서 청소년교육 전문 강사로 활동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자원봉사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과 구체적인 활동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청소년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게 거의 일상(日常)이 되었고, 그렇다 보니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숙제를 같이 고민하는 일, 일부 청소년들의 철없는 일탈(逸脫)을 안타까워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고영택 선생님의 몫이 되었다.
고영택 선생님이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체로 자상하고 긍정적인 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청소년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일부 청소년의 ‘문제’일 뿐 대다수 청소년은 ‘문제’가 없다는 게 고영택 선생님의 생각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일부 청소년이 일으키는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영택 선생님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조언을 겸한 당부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자.

아이들의 잠재능력을 믿고, 기다려라

“청소년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문제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기대하지 마라. 아이들은 그런 기대가 몹시 부담스럽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른다.”

“어른 또는 부모의 가치관에 아이들을 가두지 마라. 어른이라고 해서, 부모라고 해서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른들이 살아온 과거 세상과 아이들이 사는 현재 세상 그리고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세상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다른 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게 아니니까 아이들 세상을 지나치게 걱정하지 마라.”

“기다려라. 아이들의 잠재능력을 믿고 기다려라. 기다려주면 아이들은 해낸다. 당장에 성과를 내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면 될 일도 안 된다. 그러니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라. 아이들은 믿어주는 부모를 실망하게 하지 않는다.”

“때로는 엄격하게 훈육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필요하다면 눈물이 쏙 빠지도록 따끔하게 가르치라. 옛말에 고운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자녀의 인권을 존중하는 세상으로 변하여 체벌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는 옳고 그른 것을 분명히 깨우치는 ‘사랑의 매’가 필요할 때가 있었다.”

● 이 대목에서 고영택 선생님은 ‘사랑의 매’에 얽힌 일화 한 토막을 들려주었는데, 요점만 간략히 소개한다.

제주도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그 옛날, 이루 말할 수 없는 말썽꾸러기 제자 C군이 있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온갖 말썽을 부렸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서울중곡초교 교장으로 있을 때 뜻밖에 찾아온 옛 제자로부터 그 제자 C군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그 말썽꾸러기가 폐교 위기에 놓인 모교를 살렸고, 도박 없는 살기 좋은 마을로 변화시킨 훌륭한 이장이 되었고, 군 전체 이장대표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연락이 닿아 그 제자를 만나게 되었다.
“C리장님, 초등 시절 참 미안해요. 잘못했다고 많이 혼냈었는데...”
그러자 말썽꾸러기였던 그 제자가 선생님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께 매 맞은 기억이 없어요.(그때는 손바닥 정도는 때리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단 한 번도 선생님을 미워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매를 들 때마다 왜 매를 드는지 그 이유를 항상 설명하고 나서 혼을 내셨거든요. 그렇게 저를 엄격하게 가르치셨기에 오늘날 제가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거지요. 오히려 선생님 댁에서 맛있는 라면을 끓여주셨던 추억,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영택 선생님이 스스로 정한 두 번째 정년퇴직 날짜는 10년 후쯤인 75세가 되는 어느 날이다. 그때까지 고영택 선생님은 언제와 어디서를 가리지 않고 오로지 가르치는 일에 몰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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