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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암(楸岩)”인가 “능파대(凌波臺)”인가?
《조수봉의 포토에세이》

글·사진 조수봉

동해안 7번국도 삼척시와 동해시 중간 바닷가에 추암이 있다. 큰길에서 바닷가로 쭉 들어가 삼척선(三陟線) 추암역 밑 좁은 굴다리를 나서면 벌써 비릿한 바다 내음과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고 좁은 길 담 낮은 시골집 몇 채를 따라 바닷가로 나서면 망망대해에 파도 소리가 거친 곳, “추암 해변”이다.

추암(湫岩)은 “송곳바위”라는 뜻이다. 누가 지은 이름인지는 불명하다. 한명회는 이곳을 “능파대(凌波臺)”라 했다. 송곳바위는 맘에 안 들어 나름 다른 이름을 지었다 한다. 그러나 추암이든 능파대든 사람의 혼을 흠씬 앗아가는 벽력같은 소리를 따라 오른쪽 해변으로는 너나없이 빨랫줄에 빨래 대신 오징어며 해산물들이 제멋대로 걸쳐져 있는 몇 안 되는 집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고, 왼쪽 기묘한 형상의 석림(石林) 쪽으로 길을 잡으면 해암정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 촛대바위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5~6년 전만 해도 그러했다.

촛대바위
▲ 촛대바위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곳 추암 해변은 여타의 많은 해수욕장들을 닮아 갔다. 그 옹기종기 집들은 슬며시 키 재기 하는 현대식 건물들로 바뀌었고 우렁찬 파도 소리는 출력 좋은 앰프와 더불어 악을 쓰는 이름 모를 가수들의 버스킹과 줄다리기를 하는 곳. 투박스런 강원도 할매들의 정겹던 오징어 흥정 소리가 유명 커피숍의 커피 냄새에 사그라진 곳, 지금의 추암 해변이다.

물이라도 나갈라치면 모래사장엔 관광객들이 추억을 남기려 애써 기묘한 포즈들로 사진을 찍고, 이런 모습을 예나 없이 느긋이 바라보는 형제바위는 오늘도 바로 그 자리에서 들락이는 파도와 함께 옛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형제바위
▲ 형제바위

고려 시대, 한 사람이 있어 정자를 지었다. 삼척심씨(三陟沈氏) 시조 심동로(沈東老)였다. 그 억센 소리와 악다구니의 파도를 피해 석림을 의지간으로 슬며시 엄청난 바다와 눈싸움을 피했다. “해암정(海巖亭)”이다. 문틀 위에는 세 개의 현판이 걸렸다. 왼쪽 전자체(篆字體) “해암정”은 계남 심지황(桂南 沈之潢)이 썼는데 해암정 각 자마다 하늘거리는 바다풀, 우뚝 솟은 바위, 물고기의 형상이다. 가운데 “해암정”은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썼다. 오른쪽 “석종함(石鐘檻)”은 송강 정철(松江 鄭澈)이 썼다고 전해온다. “해암정 뒤편을 둘러싸고 있는 돌기둥들을 석종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들려오는 정자”라는 뜻이란다. 그러나 지나는 사람들은 관심 밖이다. 그저 촛대바위가 제일이다. 요새는 한술 더 떠 여기도 생겨난, 남한 반도를 뒤덮은 출렁다리가 제일이다. 주객의 전도다. 관광을 갔다면 최소한 그 지방 랜드마크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가서 살펴야 한다. 해암정 안에 들어서 보자. 이상하게도 파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동중정(動中靜)! 내가 신선(神仙)이 된다.

해암정
▲ 해암정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3호〉

아우성치는 여름에만 바다를 갈 게 아니다. 소한도 좋고 대한도 좋다. 또 대설이면 어떻고 동짓달이면 어떠랴. 겨울 바다는 에이는 살 속에 짠 내를 발라준다. 그리하여 그건 내년에도 건강한 삶을 이어가게 해 준다. 이번 겨울에는 바다를 보자. 그곳이 동해 추암 해변이면 더욱 좋다. 평창동계올림픽 때 운행을 시작한 강릉선(江陵線/서울-강릉) KTX열차가 금년 말부터 동해시까지 연장 운행된다는 소식이다. 조금 늦어진다고는 하지만......



[2019-12-30, 1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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