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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즈음을 사는 지혜

도봉구 평생학습 서포터즈 이경걸 기자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이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 그러니 맥 놓고 어물어물하다가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해 허둥대기 십상이다. 그랬지만,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었다. 그랬는데, 어느덧 예순 즈음이 되니 사소한 변화를 견뎌내는 일조차 만만한 게 아니다.

최근 들어 나에게 닥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오로지 일하기’에서 ‘일 반, 놀이 반’으로 일상이 바뀐 것이다. ‘오로지 일하기’ 시절을 사는 동안에 머지않아 ‘일 반, 놀이 반’ 시절이 올 거라는 걸 충분히 예측했고, 내심 그런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참 좋겠다 싶었는데, 막상 그렇게 되고 보니 그 ‘변화’를 수용하고 적응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거의 곱절로 늘어난 ‘놀이 시간’을 제대로 쓰는 일이 어렵다. 평소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떠들고 다녔으니 이참에 책이나 실컷 읽자고 작정했지만, 그것도 마땅치 않아서 어느 정도 읽고 또 읽다가는 서서히 지쳐버렸다. 그런가 하면 자전거를 한번 폼나게 타보겠다고 겁 없이 나섰다가 팔다리가 고장 나서 여러 날 동안 엉거주춤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참 좋은 놀이를 찾아냈으니…, 그것은 바로 내 방식대로 소소하게 즐기는 ‘자연탐닉’이다. 이를테면 작은 배낭에 생수와 커피와 과일 조금과 김밥 한 줄 또는 샌드위치 한 조각 정도를 담아 메고 풀과 야생화와 나무와 숲이 있는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숲길

그런데 이 놀이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꽃과 나무가 울창한 자연 속을 혼자서 걷다 보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질서를 잃고 마구잡이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연 속을 혼자 걸을 때는 어떤 생각 주머니를 열 것인가를 매우 심각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넉넉한 자연에 기대어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자 했던 즐거운 놀이가 근심, 걱정, 욕심, 후회, 회한, 분노, 원망 등등의 감정과 생각에 사로잡혀 난장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화요일에는 곤지암에 있는 ‘화담숲’에 다녀왔다. 그곳에 도착한 시간이 늦었던 터라 서둘러 산책길을 걷고 내려오는 사이 늦은 오후가 되었고, 때마침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어 길 위에 나뒹굴고 있는 낙엽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아∼, 바야흐로 계절은 가을이요, 때는 서산에 해질 무렵인데 스산한 바람까지 저렇게 불어대니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싶은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나마 가을비가 내리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만약에 비까지 처량하게 내렸다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서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 살았는가?’를 곱씹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고민하느라 술을 잔뜩 퍼마셨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나에게 이 숙제는 경마장 트랙을 숨 가쁘게 질주하는 중늙은이 경주마를 떠오르게 한다. 시시각각 모든 것이 달라지는 ‘변화의 세월’을 ‘성공적으로(?)’ 살아내려면 지금보다 더 빨리, 더 오래, 더 멀리 뛰어야만 한다고 등을 떠미는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유독 나 혼자만이 이런 느낌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금요일에 벼르고 별러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들 역시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이렇게 살고 싶어!’, ‘그렇게 사는 건 어떨까?’, ‘저렇게 살아야만 해’ 등을 주제로 앞으로 살아내야 할 ‘변화의 세월’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걱정은 그저 걱정일 뿐, 그 누가 나서서 이렇게 살라거나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날 우리는, 오고 가는 술잔에 서로의 속내를 한 데 섞으며, 담담하게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침착하게 이렇게 읊조렸다.
“다 지나간다!” 그리고…, “카르페 디엠(Carpe diem)!”

카르페 디엠

* 지난해 가을 제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옮겨왔습니다.



[2020-02-27, 13: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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