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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1책
[사람 & 사람들] 도봉문화원 사물놀이교실 신향순

도봉구 평생학습 서포터즈 김영순 기자

여러 권을 하나로 묶어 내는 합본 책처럼 4권의 굵직한 삶을 차근차근 살아가시는 신향순 선생님을 취재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나보다 먼저 살아 이 시대를 만들어온 사람들, 나의 미래를 인도해줄 선생님들을 만나는 일이 즐거워지던 차에 신향순 선생님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하며 여운을 남기셨다.
‘살아볼만 한 게 인생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축복이라고 느낀다’, ‘고통 속에서 살아야 사람이 되지 고통 없고 미추가 없는 삶은 아름답지 않다’ 라는 말씀들을, ‘이제 80 먹으니까...’란 말과 함께 겸손하게 전해주시는 그 내공이 잠시의 만남에도 전해졌다.

신향순 선생님은 도봉문화원의 사물놀이 교실을 17년째 참여하고 계시며 장구를 시작으로 꽹과리 북 징까지 모두 배우신다. 17년을 배우셨으니 이젠 프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아직 배우는 게 좋고, 점점 어려워지고,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 배울거라 말하셨다. 무엇이든 적성에 맞으면 꾸준히 하며, 또 스스로 하는 일들을 연구하고 기록하길 좋아하는 분이었다. 사물놀이반에서도 정간보를 직접 만들어 악보로 나누어주실 정도라고...


적성에 맞았던 공무원 생활

도봉문화원 사물놀이반을 17년째... 시작은 59세때셨다고 한다. 왜 장구를 배우게 되셨는지 이분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선생님은 공무원, 봉사와 자유의 시간, 풍물, 정리의 4가지 인생을 사시는 분 같았다. 1941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비교적 유복하게 자라다가, 서울의 대학교를 다니던 중 선생님은 집안 사정으로 가장 아닌 가장이 되어 학교를 그만두고 직장생활을 하게 되신다. 61년, 5.16 군사정변의 ‘국가재건 최고회의’에서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겪은, 지금 생각하면 대단했던 첫 직장을 마무리하고 선생님은 입법부(국회) 공무원공채 시험에 합격하여 국회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셨다. 책을 정리하고 만드는 도서관 일은 적성에 맞아 94년 명예퇴직 전까지 국회도서관에서만 32년을 일하셨다. 반공 일색이던 당시에도 책은 오고가서 공산권 책, 미국 책, 특히 일본 책이 상당히 많이 들어왔는데 선생님은 그 책들을 정리하기 위해 독학으로 일본어도 배워, 후엔 일본 동경에 있는 국제관계공동문제연구소에서 파견근무도 하게 되셨다고 한다.


도봉문화원 사물놀이반 신향순 선생님
▲ 도봉문화원 사물놀이반 신향순 선생님(2020년 8월 16일)

선생님은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며 동생 4명을 뒷바라지했는데, 그에 대해 물으니 ‘참 잘했다, 참사랑을 알게 해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신다며, “우리 형제들 시대는 월남전을 겪어야 해서, 동생들 셋이 월남전에 참전해 부상을 당하거나 고엽제 피해를 본 슬픈 일도 있었지만 이런 일들이 우리나라의 현대화 과정에서는 흔한 얘기”라며 “그 시절에는 동생 공부시키는 문화는 행복으로 알았다”고 전해주셨다.
요즘 사람들 중에는 과거와는 선을 긋고 그땐 옳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의외로 ‘예뻐 보인다’고 하셨다. “누구라도 현재를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자신들의 주장을 당당하게 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이런 사회가 된 것이 다행으로 느껴지고 그들 모두가 예뻐 보인다”고, “이러한 것들이 나라의 운명인 것 같다”고 말하셨다.


행복했던 봉사와 자유의 시간

국회도서관이 현 서울시의회에 있던 시절부터 1975년 여의도로 이사한 한 참 후까지 오랜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그 이후 인생은 어떻게 써오셨냐는 질문에도 선생님은 의외의 답변을 주셨다. 97년 짝궁과 사별, 그때 나이 57세셨다고 하는데, 혼자의 삶이 두렵거나 외롭다고 느끼기보다는 처음 맞는 자유로움이 새롭고 더 넓은 세상이 궁금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사셨다고 한다.
먼저, “인생을 70까지 산다면... 이 세월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를 고민하시다 혼자서 세계 일주를 해야겠다는 욕심으로 종로에 있는 파고다학원에 등록해 영어를 배우셨다고...
그리고, “학원을 하루종일 다니는 것이 아니잖아요?”라며 도봉구청 복지과에 가서 ‘도봉구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냐 물어’ ‘인강원’, ‘홍파복지원’을 소개받아 어린장애아, 중증장애인들을 수발하는 봉사활동을 오래 꾸준히 하셨다고 한다. 시간 나면 쉬기 바쁜 나로서는 대단하시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장애인을 돌본다는 일은 내 행복을 확인하는 일이다, 부모님은 나를 몸 건강하게 낳아주면 그걸로 끝나는 거지... 나 대학 졸업 못 시켰다고 부모가 못한 건 아니다, 그걸 내가 봉사를 하고 오면서 절실하게 깨달았어.” 건강하다는 이유 하나로 심리적 도움을 얻은 그때, 선생님은 그때 철이 들었다 느끼셨다고 한다.

선생님은 배운 영어로 형제들이 사는 미국에서 몇 개월을 머물며 혼자 미국 여행을 다녀 보시기도 하고, 세상이 넓은 걸 확인해야겠다며 중국에도 1개월, 인도에도 1개월간 여행을 다녀 보시기도 하고, 또 혼자 지리산, 설악산 종주도 여러 번... 스스로 50~60대를 인생을 실감하고 자유를 만끽하며 산, 본인의 가장 활발하고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하셨다. 아직 40대인 내가 느끼기에 어떻게 그런 많은 것들을 하셨을까 라고 물으니, 선생님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어...’라며 밝게 받아 주셨다.


신향순 선생님과의 인터뷰

가슴으로 느끼는 장고 소리

아직 이분의 사물놀이 20년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았다. 어떻게 장구를 시작하시게 되었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다시 또 부지런한 습관과 배우길 좋아하는 성격을 드러내셨다. 일이 있어 주중에 인천에 머물게 되셨을 때, 남는 시간을 그냥 보내기 싫어 인천 남구청에서 주관하는 주부대학을 나가게 되셨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노래교실을 택하는 것을 보고 장구교실을 보태주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장구채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나 지금도 생각하면 소스라치게 놀랄 일인데, 덩덩 궁다쿵 치는데 이 소리가 가슴으로 오는거예요. 우리 소리...”
이 가슴 뛰게 한 주부대학 강좌가 끝나자, 아무래도 이걸 더 배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셨다고 한다. 물어물어 인하대학 인근 새마을금고 지하실에서 장구를 이어 배우게 되었고, 이것을 기회로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밀레니엄행사 지신밟기에도 참가하게 되었다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사물놀이를 배우고 싶은 욕구는 멈추지 않았다. 그즈음 도봉구민회관 도봉문화원에 문화교실 중 소규모로 개설된 장고반이 있었다.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데 마침 찾아 등록하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17년째 쉬지 않고 사물놀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도봉문화원에서는 22회 정기총회에서 도봉문화원의 발전을 위해 애쓴 공로로 선생님께 구청장상 표창을 수여했다. 지금 선생님은 도봉문화원 사물놀이반 수강생을 대표하는 회원이 되셨다.

도봉문화원 풍물교실은 장고(기초·중급반), 사물놀이, 연구반이 있고, 선생님은 염귀공 강사가 거의 초창기부터 계속 지도해온 사물놀이반(30명 모집)에서 활동하신다. 수강생 중에는 10년 이상 함께 해온 회원이 10여 명이나 되는 등 시작하면 꾸준히 하시는 분들이 많고 모집과 함께 마감될 정도로 배우고자 하는 구민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매년 11월에는 ‘도봉문화예술제’도 도봉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치러지는데, 오랜 경력만큼이나 실력이 대단하시다고 보러오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도봉문화원 사물놀이 등 강좌는 3개월(1-3,4-6,7-9,10-12월) 단위로, 월2만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수강할 수 있다. 물론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일시 휴관 상태이지만 재개되면 다시 구민들이 활발히 이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65세 이상, 장애인, 유공자 등은 20% 할인도 받을 수 있다.

※ 도봉문화원 사물놀이 교실(티브로드뉴스, 2003. 9. 16)
   https://blog.naver.com/tseoul/80198163086


제22차 도봉문화원 정기총회
▲ 서울포스트신문. 도봉구 뉴스, 2016. 2. 29.
https://blog.naver.com/spostnews/220642016587

정리... 다시 또 책과 인연

책을 만져보던 사람이면 누구나 내 책을 한 권 내어보길 꿈꿀 수 있다. 선생님도 분명 그래 보인다고 느끼며 여쭤보았더니 역시나 메모와 글쓰기를 나름대로 해오셨고 도봉소식지 등에 글도 올려봤으며 본인의 책 또한 언젠가 준비해 볼 생각이 있으시다고 하셨다. 이제껏 살아오시면서 하신 일 중에 책을 정리하고 만드는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선생님은 책을 만드는 일이 제일 재미있으셨다고 한다. 여러 책을 만들었지만, 특히 ‘대한민국국회50년사’를 만드는 데 참여하신 것이 의미 있는 큰 작업이었고, 최근에는 문중의 대종회에 몸담고 있으면서 잘못 낙인찍힌 선조의 명예를 회복하는 책을 오랜 기간 착실히 준비해 완성단계에 있다고 했다.

정리... 올해 80이신 선생님은 이제부터는 인생을 정리하는 시간들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어떤 일을 맡았을 때 차근차근 잘 처리되도록 마음을 쓰고 노력하는 사람은 미련이 없고 주변이 이 사람을 중심으로 잘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인생이 70에 접어들 무렵 선생님은 ‘21세기조선통신사서울-東京한일우정walk’ 행사에 참여해 두 번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으며 일본인들과 한일 친선 만남을 가졌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통신사들이 한일교류를 위해 12번 왕래했던 그 길을 일본인들과 함께 시간을 들여 걸으며, 한일관계의 역사, 특히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일제강점기의 실상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목적이었다. 선생님과의 대화는 재미있고 센스있다 느껴졌다. 아마 함께 한 일본인들도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많은 진실을 얻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나는 내 ‘인생 책’의 몇 권 몇 장을 써나가고 있는 것일까? 일에 치여 사는 시간들이 많아지며 여유로운 사람이 부럽지만, 한편으론 일이 재미있고 내 자리의 존재감이 스스로 자랑스러운 나이가 되었다. 여자나 부모로서 고됐던 일들에 대해서 선생님은 ‘당당하게 감내해야 되잖냐’고 말씀하셨고, 나는 이상하게 위로를 받았다. 힘들다 어렵다 느끼기 전에 차근차근 내 일을 처리해 나가는 것, 원칙을 지킨 삶에 만족감을 느끼는 것... 이런 보편적인 기준이 통하는 분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의 4권 정리편이 아름답게 써져서 좋은 책 1권으로 완성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20-08-28, 09: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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