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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리를 한번 제대로 배우고 싶어”
첫발 딛기

도봉구 평생학습 서포터즈 이경걸 기자

내 친구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다. 의정부에 살고 있는데 농부를 겸직하고 있다. 가평 어디쯤엔가 200평쯤 되는 밭을 장만해서 틈만 나면 그곳으로 달려간다. 밭 앞쪽으로 졸졸졸 시냇물이 흐르고, 제법 모양을 갖춘 농막도 있어서 몇몇 친구들이 종종 아지트로 이용한다. 모여서 술 먹는 장소라는 뜻이다.
그날도 특별한 일 없이 친구 네 명이 모였다. 낮 동안 뜨거웠던 해가 뉘엿뉘엿 앞산 꼭대기에 걸릴 즈음, 뒷산 어디선가 소소한 바람이 불어와 술 한잔하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술 먹는 일에 헌신적인 협력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므로, 한 사람이 고기를 굽는 동안 또 한 사람은 밭에 지천으로 깔린 상추와 오이와 고추를 따서 씻고, 또 한 사람은 큰 우산이 가운데 꽂혀있는 테이블에 먹고 마시는데 소용되는 갖가지 연장(?)들을 펼쳐 놓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손과 발이 척척 맞는다.
초저녁이 깊어져서 어둑한 밤이 될 즈음까지가 제1부다. 학교 다닐 때 끼리끼리 정범(正犯)과 종범(從犯)과 공범(共犯)이 되어 저지른 온갖 기행(奇行)과 만행(蠻行)을 들춰내어 웃고 떠드는 시간이다. 서로 흉보고 손가락질하는 사이 유쾌한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술잔도 덩달아 바쁘게 이 손 저 손으로 옮겨 다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웃고 떠드는 일이 시들해진다. 아까 받아놓은 술잔이 숟가락 옆에서 잠잠히 머문다. 그렇게 잠시 조용한 시간이 흐른다.
이제 2부가 시작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둠이 내려앉은 먼 산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거의 동시에 각자의 속내를 쏟아놓는다.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거냐?”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
“너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려 하니?”
어느덧 나이가 60줄에 걸리다 보니 예전에 잘나갔던 사람이나 현재 잘나가는 사람이나 모두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가장 중요한 토론 주제가 된다. 사실 만날 때마다 반복되는 레퍼토리니 새로울 것도 없는데, 그날은 제법 술기운에 기대어 토론이 깊어졌다.
누군가는 식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는 다리에 힘이 있을 때 자주 여행을 다니겠노라 말했다. 선생님 겸 농부인 친구는 정년퇴직 후 이곳에 들어앉아 힘껏 농사를 지을 거니까 언제든지 놀러 오라고 인심을 썼다. 남들이 다 한마디씩 하는데 나만 그냥 입 다물고 있기가 민망해서 한마디 보탰다.
“나는 요리를 한번 제대로 배우고 싶어.”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이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A 친구는 “뜬금없이 무슨 요리?”냐고, B 친구는 “마눌님이 이제 밥 안 해 준대?”냐고 비아냥(?)거렸다.
“놉!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한번 해보고 싶어서 그래. 재밌을 거 같아서. 그런데 학원비가 만만치 않더라고.”
그러자 잠자코 옆에 있던 C 친구가 “해보고 싶은 건 해 봐야 한다”고 역성을 들어주며, 학원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통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것이 바로 ‘국민내일배움카드’다.
나는 서둘러 이 카드를 신청했다. 그리고 조금 오래 기다려 이 카드를 발급받았고, 이 카드로 요리 학원에 등록하여 이탈리아 요리에 첫발을 디뎠다. 무척 재미있고, 아주 즐겁고, 매우 유쾌한 경험이었다.

이 카드에 관한 자세한 정보가 궁금하다면 아래 주소로 접속하시라.
http://www.hrd.go.kr/


국민내일배움카드 시행 안내문

이탈리아 요리가 어쩌라구?

8월 3일 / 월요일
이탈리아 요리 교실(샐러드 & 샌드위치) 첫날이다. 혹시 늦을까 싶어서 12시쯤 집을 나섰다. 1호선 방학역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운이 좋았다. 앉아서 갔다.
살짝 설렌다. 이 나이에 요리를? 그것도 이탈리아 요리를! 괜히 웃음이 나온다.
종로3가에서 내려 15번 출구로 나가니 학원 간판이 보였다. 핸드폰으로 미리 위치를 검색한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아는 게 힘이다.
몇몇 사람이 계량컵, 계량스푼, 앞치마, 나무젓가락, 면포, 행주 등을 사느라 바쁜 사이 ‘국민내일배움카드’를 찍고 강의실로 들어갔다. 요리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을 꼼꼼하게 챙겨준 마눌님이 무척 고맙다.
왼쪽에 싱크대가 있고 오른쪽에 가스 불이 있는 실습 테이블에 섰다. 매우 어색하다. 마주 보고 선 아줌마 혹은 아가씨도 그런 듯싶다. 슬쩍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이런! 스무 명 가운데 남자는 나 혼자다. 모두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제대로 살필 수 없으나 내가 가장 어른(?)인 듯싶다. 그러니까 청일점에 최고령이란 말씀?
주섬주섬 준비물을 꺼내놓고 수업 시작을 기다렸다. 어떤 남자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요점은 절대로 결석하지 말라는 것, 학원을 들고 날 때 반드시 카드를 찍어야 한다는 것. 드디어 요리 선생님이 등장하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요리는 ‘소고기 가지 파니니’와 ‘수제 바질 페스토 시칠리아나’다. 이런 젠장, ‘파니니’는 뭐고 ‘시칠리아나’는 또 무엇이냐? 선생님이 식재료를 설명하는데 처음으로 보고 듣는 것이라 진땀이 날 지경이다.
곧이어 본격적인 조리 실습. 가지는 편 썰고, 양파는 채 썰고, 고기는 양념으로 밑간하고,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를 볶다가 양송이와 고기 양념한 것을 넣어 볶아주고, 호밀 치아바타에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크레숑을 깔고 가지와 불고기와 치즈를 올려서, 빠니니 그릴을 찍어 완성하니 이게 바로 ‘소고기 가지 빠니니’란다. 와~. 과연 복잡하도다. 식빵에 딸기잼만 듬뿍 발라 먹어도 꿀맛이던데….
이왕 내친김에 ‘수제 바질 페스토 시칠리아나’도 만들어 보자. 이건 좀 간단하다. 믹서에 바질, 마늘, 잣,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 등을 넣어 만든 걸쭉한 죽(이걸 전문 용어로 바질 페스토라 한다)을 끓는 물에 삶아낸 리가토니와 파르팔레 위에 부으면 완성이다. 그런데 말이다. 바질은 얼마만큼 넣어야 하나? 잣은 껍질을 까나 마나? 마늘은 편으로 써나 다지나? 리가토니와 파르팔레는 어떻게 다르며 얼마나 삶아야 하나? 아~. 이 또한 복잡하고 어렵도다.
드디어 오후 다섯 시. 정신없이 세 시간의 수업이 끝나니 다리가 휘청거린다. 애써 만든 두 가지 요리를 그릇에 담아 무슨 보물이나 되는 것처럼 소중하게 품고 집에 왔다.
“마눌님, 드셔보시게. 내가 만든 이따알리아 요릴세~.”


소고기 가지 파니니 완성품과 재료들

8월 4일 / 화요일
‘과카몰리 클럽 샌드위치’와 ‘부채살 루꼴라 샐러드’를 만들었다.

8월 10일 / 월요일
‘튜나 멜트 파니니’와 ‘크림소스에 빠진 뇨끼’를 만들었다.

8월 11일 / 화요일
‘리코타치즈 샐러드’와 ‘카치아토레’를 만들었다.

8월 12일 / 수요일
‘브로콜리 쿠스쿠스 샐러드’와 ‘BMLT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8월 17일 / 월요일
‘아보카도 연어 콥 샐러드’와 ‘포테이토 샐러드&크로아상’을 만들었다.

8월 18일 / 화요일
‘두부 유자 드레싱 샐러드’와 ‘시금치 프리타타’를 만들었다.

8월 19일 / 수요일
‘발사믹 쉬림프 샐러드’와 ‘통 바게트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8월 24일, 25일, 26일, 31일, 9월 1일, 2일
아무튼 ‘이탈리아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직접 만든 샌드위치, 샐러드 등

나의 요리는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쓰일까?

이로써 나의 이탈리아 요리 공부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불과 얼마 전까지 수업을 받았건만, 레시피 없이 지금 당장 요리를 만들어 내라면? 솔직히 자신 없다. 그러나 한번 해본 것이니 촘촘하게 써놓은 메모를 볼 수 있다면, 그리고 재료가 제대로 준비된다면 거의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다.
수업을 받으면서 30여 가지의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요리의 대부분은 우리 식구들의 저녁 식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맛있게 먹었다. 그러다가 점차 맛있게 안 먹었다. 그러더니 끝 무렵에는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무릇 음식이란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신나게 만드는 법! 그래서 생각해 본다. 나의 이탈리아 요리는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쓰일까? 누군가 내가 해 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는 그런 때가 온다면, 나는 기꺼이 앞치마를 두르고, 가지를 지지고 호박을 볶고 감자를 튀길 텐데….



[2020-08-28, 09: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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