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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라서 더 즐거웠던 일본 여행

도봉구 평생학습 서포터즈 김보옥 기자

도쿄타워 전망대에서
▲ 도쿄타워 전망대에서

정년퇴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니까 조금 오래된 이야기다. 해외여행에 관심이 많았지만, 혼자 가는 것이 두려워 망설이던 어느 날, 딸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가게 되었다. 가이드를 대신한 든든한 딸이 곁에 있어 더 즐겁고 행복했던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이 글을 쓴다.

아들과 딸 중에서 누가 엄마랑 더 말이 잘 통할까? 딸이 있는 엄마라면 누구나 ‘딸’을 꼽지 않을까? 우리 모녀도 그렇다. 시간이 되면 같이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딸아이는 자기 휴가에 맞춰 그렇게 하자고 흔쾌히 ‘오케이’ 했다.
어디로 가나? 이런저런 고민 끝에 그때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일본으로 정하고, 숙소 예약 등 여행 준비 일체를 딸아이에게 일임했다. 딸아이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는 등 해외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일본의 여러 도시 가운데 식도락의 도시로 잘 알려진 오사카였다. 우리는 간사이공항에 내릴 때부터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서툰 손짓과 발짓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예약한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만큼 호텔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 참으로 험난(?)했다.
딸아이는 평소 일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즐겨봐서 일본말을 조금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낯선 상황에 놓이게 되니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지하철 티켓을 파는 곳으로 향했는데 사람은 없고 기계들만 놓여 있었다. 순간, 딸아이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일본말은 조금 할 수 있었지만, 일본글자는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이번 여행에서는 택시비가 엄청나게 들겠구나’ 생각했다.
잠시 당황했던 딸아이가 다행히 정신(?)을 차렸다. 역무원을 찾아 서툰 일본말로 방법을 물어서 티켓을 끊었고 드디어 지하철을 탔다. 일본 지하철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거미줄처럼 얼키고 설켜서 길을 잃어버리기에 딱 좋을 듯싶었다.

우리가 목적하는 역에 도착했는데 호텔이 위치한 출구를 쉽게 찾을 수 없어 한참을 헤맸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역 안에서 떡을 팔고 있는 가게의 점원에게 호텔의 위치를 물었다. 그 점원은 친절하게도 호텔과 가장 가까운 출구로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무사히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해 준 그 점원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역 안에 있는 그 떡집을 찾아가 떡도 사고 감사 인사도 전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딸아이의 일본어가 제법 유창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낯설고 긴장이 돼서 못하겠다더니 숙소를 제대로 찾아오고 긴장이 풀리니 일본말이 술술 풀리고 귀에도 쏙쏙 들어오더란다.

호텔로 돌아와 천천히 방을 살펴보았다. 매트리스 두 개, 아주 작은 테이블 두 개, 조립식으로 만든 샤워실과 화장실 그리고 그곳에 비치된 몇 가지 일회용품들. 이게 전부였다. 크기가 작아 마치 장난감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명색이 일본 호텔인데 이게 뭐지 싶었다.
샤워할 때 일회용품을 사용해보니 품질이 나쁘지는 않았다. 딱 한 번 사용하게끔 아주 경제적으로 만들어 깨끗함과 편리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런 게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나라 호텔은 대개 규모가 크고, 화려하지 않은가?

전통이 살아있는 도시 교토

일본 여행 2일 차, 평소 늦잠을 자는 잠꾸러기 딸이 6시에 일어나 깜짝 놀랐다. 오늘의 여행지는 교토. 일본에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간사히 스루패스를 사 두었기에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기차역으로 갔다. 거기서 교토로 가는 특급열차를 타면 될 터였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역에서는 특급열차를 탈 수 없어 환승을 해야 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한 번도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교토역에 도착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거리와 신사를 둘러봤다. 대도시와 다른 풍경과 깨끗함에 감탄했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관광지로 유명한 ‘기요미즈데라’라는 신사였다. 규모도 크지만, 오래되었음에도 잘 보존되어 있어 관광객들이 무척 많았다.
그 신사의 본당에서는 교토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목에는 특이하게 세 갈래로 내려오는 약수가 있는데, 건강과 부와 행복을 상징한다고 일본인들이 하는 말을 엿듣고 우리도 그 물을 받아먹기 위해 줄을 섰다. 나는 가족의 행복을 빌며 행복의 물을 마셨다. 딸아이는 세 가지를 다 놓칠 수 없다며 세 가지 물을 섞어 마셨다.

사슴의 천국, 나라

나라는 사슴들의 천국이었다. 정원에 사슴이 어찌나 많은지 깜짝 놀랐다. 곳곳에서 “센베이 센베이” 하며 사슴에게 줄 과자를 팔고 있었다. 딸아이가 사슴에게 줄 전병 과자를 사려고 지갑을 꺼내자 눈치 빠른 사슴들이 딸아이를 둘러쌌다. 그 가운데 뿔이 가장 큰 녀석이 빨리 과자를 달라고 딸아이의 엉덩이를 뿔로 밀었다. 과자를 손에 쥔 지 3초나 지났을까? 딸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전병 과자를 몽땅 빼앗기고 말았다. 과자가 없다고 양손을 들자 사슴들은 콧방귀를 뀌며 다른 곳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사슴에 둘러싸여 있던 그때의 딸아이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터져나온다.

음식의 천국, 오사카

일본 여행 마지막 날. 호텔 데스크에 물어서 호텔 가까이에 있는 100% 천연온천을 즐겼다. 개운하게 온천도 즐겼겠다, 날도 저물었겠다, 배도 출출하겠다. 그래서 오사카의 명동이라는 도톤 보리로 나갔다. 번쩍번쩍 현란한 불빛이 오사카 도톤 보리의 야경을 수놓고 있었다.
식도락의 도시답게 먹을거리들이 많아 어찌나 잘 먹었는지 체중이 족히 2kg은 늘어난 것 같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시간이 저녁때라 오사카성에서 마지막 추억을 쌓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나는 일본 여행에 매력을 느껴서 환갑여행을 포함해 서너 번 정도 더 다녀왔다. 딸아이는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해 1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현재 부업으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



[2021-02-19, 15: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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