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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이 책 ② 『오십후애사전』 / 이나미(정신과 전문의) 지음 / 추수밭
“나이 든 당신의 삶도 충분히 아름답다!”

도봉구 평생학습 서포터즈 이경걸 기자


책 표지 - 오십후애사전

50대 초반에 이 책을 처음 읽었습니다. 그때는 현역이었지요. 내 사무실에서 내 일을 하던 때였습니다. 하는 일이 제법 잘 되어서 제 깜냥도 모르고 우쭐했지요.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쭈욱~ 그 괜찮음이 이어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덩달아 돈, 건강, 가정생활, 사회적 관계, 정서, 감정 등 나를 지탱하는 것들도 더 좋아질 거라고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랬으니 이 책이 제 마음에 자리를 잡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으려 했던 것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데도 기어이 나를 50대로 만들어 놓은 세월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습니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렇구나!, 좋은 말이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설마 그러겠어? 싶었습니다. 말인즉 옳지만 뭐 그냥 그러려니,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곱씹어 마음으로 읽지 않고, 그저 눈으로 건성건성 읽는 바람에 특별히 건질 만한 지혜나 감동이 없었던 거지요.

세월이 흘렀고, 이제 60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80년쯤 산다고 치고, 우리 인생을 하루 24시간에 비유한다면 오후 6시쯤이 되는 때랍니다(이계진 지음, 《주말농부 이계진의 산촌일기》에서 발췌). 어떤 이는 인생의 시간에서 오후 6시면 아직도 시간이 넉넉하다고 여길 겁니다. 한여름의 오후 6시는 낮의 열기가 여전히 이어지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한겨울의 오후 6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 겨울의 오후 6시는 이미 을씨년스러울 수도 있으니까요.

최근에 이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오래전에 ‘그저’ 읽었던 바로 그 책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그 책인데, 그때와 지금은 여러 가지가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후다닥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한 단어, 한 문장을 오래오래 꼭꼭 씹어가며 느리게 읽었습니다. 책의 알맹이를 아껴 먹으려는 뜻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로 앞에서 읽은 내용조차 기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뭐랄까, 총기(聰氣)가 흐려지는 느낌?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하게 달라진 점은, 그렇게 천천히 곱씹어 읽은 단어와 문장들이 이제는 내 마음에, 내 머릿속에 콕콕 파고든다는 것입니다. ‘그냥 뭐 그렇구나~’가 ‘아! 그렇구나!’로 변하는 각성을 짜릿하게 느꼈다고나 할까요?

이 책에서 저자가 건네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제는 두려울 것도 없는 나이, 과거를 내려놓고 성큼성큼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먼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나이 들면서 찾아오는 신체적, 감정적 변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이전과는 다른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다음과 같이(오십, 후, 애, 사, 전) 살아가면 나이 든 당신의 삶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五十, 나이에 대한 새로운 상상’은 이전 세대와 21세기 50대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이 변화에 대처하는 법, 노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허덕이는 낀 세대를 위한 처방, 세상과 새롭게 관계 맺는 법,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다루고 있습니다.

‘後, 세월의 흔적에 익숙해지기’에서는 50대에 찾아오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와그라 증후군’, ‘건강염려증’, ‘성적 부조화’,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愛, 사추기(思秋期)의 은밀한 감정 다루기’는 사춘기 못지않게 감정의 격랑에 휩싸일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감정의 파도에 몸을 싣고, 낯설게 살아보고, 외로움을 연습하고, 주저앉지 말고 떠나고,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事, 다시 세상과 사랑하기 위한 조건’은 50대 이후 일과 사랑, 관계의 방정식을 조명합니다. 뒤늦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법, 다시 사랑하는 법, 자식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는 법을 소개하고,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고 강조합니다.

‘典, 인생의 수레바퀴를 완성하는 행복 공식’은 오십 대에 추구할 수 있는 행복에 이르는 길을 안내합니다. 불가능한 일에 행복을 저당 잡히지 말고, 유한한 시간에 고마워하며, 죽음을 상상하되 현재의 삶을 즐기라고 조언합니다.


● 추신(追伸) - 1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닿은 문장에 밑줄을 치고, 여백에 나의 소견(所見)과 경험을 끄적여 놓았으니 한가한 틈을 골라 읽어봐 주시길….


* 역사에 남는 예술가들의 창조만 창조는 아니다. 보통의 사람도 자기 삶을 창조의 질료로 쓰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역사에 남는 위대한 음악이나 미술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처럼, 이름 없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작품도 똑같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p. 74).
블로그 이웃 중에 윤** 님이 있습니다. 과수원과 텃밭과 목공방을 중심으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알콩달콩한 시골살이를 블로그에 올리고 있지요. 글솜씨가 좋아서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글에 담긴 사연들이 진지하고 솔직해서 배울 점도 아주 많습니다. 그랬는데 얼마 전에 윤** 님이 책을 한 권 냈습니다. 《귀촌 후에 비로소 삶이 보였다》라는 책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한 권 사서 읽었습니다. 정말 풍요롭게 사시더군요. 저 또한 이 책을 읽는 동안 풍요로웠고요. 보통 사람들도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지요.

* 이제야말로 자기 자신에게 투자할 때다.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은 것 먹고, 가고 싶은 곳 가면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행복을 찾기엔 결코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이라도 당장 자신에게 선물도 주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할지 연구하고 실천해야 한다(p. 120).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를요. 그랬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더군요. 기껏 생각나는 게 바다낚시, 간짜장, 제주도 한라산 둘레길입니다. 결코 시간이 많지 않다니 서둘러야겠습니다. 그런데 뭐부터 하나? 간짜장? 오케이!

* 중년이 되면, 청년 시절 악착같이 이루려 했던 목표들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 정상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해도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p. 125).
청년 시절에 저의 우상은 한수산, 박범신, 오정희 작가였습니다. 중년이 되면 그들과 비슷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목표). 중년이 되어서 알았습니다. 그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재능과 노력의 품질이 확연히 달랐으니 당연한 일이었지요(한계).
3년쯤 전에 명함을 새로 만들었습니다(또 다른 인생). 이름 앞에 ‘풋농부’라는 직책 겸 직급을 새겨넣었습니다. ‘풋’은 ‘새로운 것’, ‘덜 익은 것’, ‘미숙한’, ‘깊지 않은’을 뜻하는 접두사입니다. 그러니까 ‘풋농부’는 ‘어설픈 농부’라는 뜻입니다. 때를 맞추어 영천과 서울을 오가면서 사과 농사를 짓는 일이 신기하고 재미도 있습니다.

*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남 앞에서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내가 겪은 것을 그 사람들은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듣는 입장에서는 재미도 없다. 무엇보다 과거만 자랑하거나 집착하고 현재에 충실하지 않으며 결국 내 현재만 처량하고 빈곤해질 뿐이다(p. 153).
맞습니다. 내가 아는 A는 만날 때마다 과거 이야기를 해서 아주 지겹습니다. 잘 나가던 그 시절에 얼마나 잘 나갔는지 자랑질하느라 저 혼자 떠듭니다. 이제는 하도 들어서 그러려니 합니다만, 결코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왕년에 잘 나가지 않은 사람 있습니까? 그런데도 자기만 그런 줄 알고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하는 A를 보면 철없다 싶습니다. 딱하기도 하고요.

* 오십 대의 발목을 잡는 생각 중 하나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수준이 되어야 서글프지 않은 노년을 보낼 수 있다는 고정관념도 다시 짚어보아야 한다(p. 174).
정말 궁금합니다. 서글프지 않은 노년을 보내려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수준을 갖춰야 할까요? 슬기로운(혹은 풍요로운) 노후생활 제안한다는 책을 읽어봐도, 강연을 들어봐도 명쾌한 정답을 찾을 수가 없네요. 사람마다 형편이 다르니 제 분수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공자 왈, 맹자 왈’만 강조할 뿐이지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고정관념’이라고요? 그렇다 치더라도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어느 정도의 경제적 수준이 되어야 서글프지 않은 노년을 보낼 수 있는지 아시는 분 있으면 꼭 좀 알려주세요. 1억? 5억? 10억? 20억? 100억?

* 무엇을 갖겠다는 목표에만 중점을 두지 말고, 어딘가를 향해 나가는 과정, 익히고 배워나가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면, 설령 그 과실이 보잘것없더라도 열심히 사는 그 순간순간이 행복이 될 수 있다(p. 252).
정말 그렇더군요. 국민내일배움카드를 이용하여 두 번에 걸쳐 요리 수업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수업은 이탈리아 요리. 수십여 가지의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수업은 일본 요리. 계란말이, 생선초밥, 오야꼬동, 일본식 커리 우동 등을 만들었습니다. 자격증을 따는 게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이 나이에 자격증을 따서 취업할 것도 아니므로, 그저 배우는 과정을 즐기고자 했습니다. 짐작하건대 요리의 품질은 대단치 않았을 겁니다. 그랬는데 식구들이 맛있게 먹어주어 무척 뿌듯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열심히 요리하는 그 순간순간 많이 행복했습니다.


● 추신(追伸) - 2

아울러 나태주 시인의 시 한 편을 옮겨적어 놓으니 천천히 읽어봐 주시길….


틀렸다

돈 가지고 잘 살기는 틀렸다
명예나 권력, 미모 가지고도 이제는 틀렸다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고
명에나 권력, 미모가
다락같이 높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는 시간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허락된 시간
그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써먹느냐가 열쇠다
그리고 선택이다
내 좋은 일, 내 기쁜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고르고 골라
하루나 한 시간, 순간순간을 살아보라
어느새 나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기쁜 사람이 되고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틀린 것은 처음부터 틀린 일이 아니었다
틀린 것이 옳은 것이었고 좋은 것이었다



[2021-04-20, 17: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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